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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의 스포일러 있음
관람일: 2025.02.22
들어가는 글
오컬트를 좋아해서 예전부터 <퇴마록>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쉽게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을 들었고, 당연히 개봉하자마자 보러 갔다.
짧게 정리
4.5점.
오컬트물, 혹은 한국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봐도 좋을 영화.
마음에 들었던 점
자막
<퇴마록>은 한국 영화로서는 특이하게 모든 대사의 자막을 지원한다.
애니메이션의 평가로 자막이 먼저 나온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예전부터 한국 영화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줄곧 있었고, 나도 공감했기에 자막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대사를 놓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보기 편했다.
연출, 분위기
해동밀교에서의 ‘피의 공양제’로 시작되는 오프닝, 박 신부의 시점으로 넘어간 후에도 드러나는 음산한 분위기는 이 애니메이션이 어떤 분위기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다만 그 이후로 이어지는 박 신부의 아스타로트 퇴치 장면에서는 (예고편에서 이미 드러나기는 했지만) ‘능력자 배틀물’ 같은 액션 때문에 이런 기괴한 분위기가 흐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물론, 이런 액션도 하나의 호평 요소긴 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오컬트와 판타지를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가 이런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포 연출과 기괴한 순간이 꾸준히 나와주면서 이런 분위기를 유지시켜 주었다.
아스타로트 퇴치 장면
아스타로트 퇴치 장면에 대해서 몇 자 더 적자면, 오컬트물에서 신부가 구마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은 대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네 이름이 무엇이냐”로 대표되는 성경 구절, 혹은 기도문 읊기 정도다. (e.g. <검은 사제들>, <사자>)
실사 영화에서 만화적 연출을 쓸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감도 있고, 실제로 <사자>에서 박서준의 손에서 하얀 불이 피어오르는 장면은 진짜 최악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인데다 그런 만화적 연출을 잘 녹여내어 기도를 욀지언정 지루함 대신 통쾌함으로 구마 장면을 채웠다.
아쉬운 점
원작 <퇴마록>을 접한 적 없는 입장에서
본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타락한 해동밀교 교주의 의식을 막아내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주연 격으로 묘사되는 ‘현암’의 위치가 너무 애매하다.
물론 원작 <퇴마록>의 주인공이 현암인만큼(따로 찾아봐서 알았다.) 제작사 입장에선 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 지식 없이 처음 접하는 입장에선 현암의 존재가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현암의 사연, 목적 등 모든 것이 해동밀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보니 본 영화에서 현암을 빼도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수준이다. 차라리 현암을 빼고 장 호법, 서 교주에 분량을 할애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특히 장 호법과 준후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약한 편이다 보니 이런 아쉬움이 더 짙게 남는다. ‘이야기가 다소 생략된 것 같다’는 느낌이 짙은 것도 이와 관련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옹호를 좀 하자면
원작 <퇴마록>이 방대한 시리즈인 만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하다.
원작의 팬이라면 당연히 주연 4인방에 대해선 알고 있을 테고, 그럼 당연히 4명 전부가 나오는 걸 기대하지 않겠는가. 특히 주인공인 현암이 빠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러닝 시간이라는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다소 이야기를 생략하기도 해야했을 것이다.
액션 - 서 교주 레이드
앞에서 분명 ‘액션도 하나의 호평 요소이긴 하다’고 작성하긴 했다. 그러나 후반부 서 교주 레이드는 초반의 아스타로트 퇴치 장면에 비해 진행되는 시간이 길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대사를 좀 자주 치는 지라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투 양상도 ‘턴제 전투’처럼 느껴졌고, 액션 자체도 정적인 감이 있었다. 사실 이건 서 교주 레이드에서만 느낀 점은 아니다. 아스타로트 퇴치 장면에서도 분명 느끼긴 했으나 이 때는 퇴치 장면 자체가 짧아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마무리
약간의 아쉬움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아쉬웠던 부분도 원작이 방대한 시리즈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할 순 있는 수준이고.
원작의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고, 팬이 아니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