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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의 스포일러 있음

완독일: 2022.07.01

대형 쇼핑몰 ‘스완’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어느 순간부턴 추리 소설인 걸 잊고 그냥 읽었다. 사실, ‘기쿠노’의 죽음에 대한 진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부조리한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비극을 매듭짓는 이야기니까.

사실 나는 사회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영향 - 이 소설을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추리 소설로서의 면모가 있긴 하지만 추리보다는 주인공인 ‘이즈미’의 성장 서사나 드라마적 분위기가 더 강하고, 인상깊었다. 그러나 이야기 내적으론 ‘추리’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기에 빼놓을 순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즈미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작 중에서 ‘백조의 호수’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즈미가 상담 치료를 받는 도중에 ‘백조의 호수’의 엔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터무니없이 비참한 결말과 둘 중 어느 쪽이 나은지를 묻는다면 이즈미 역시 나중에 나온 버전을 선택할 것이다. 비극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선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난 네 죄를 다시 쓸 거야.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 볼썽사나웠던 다툼, 방관자로서 살아남은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 널 구해버린 내 이기적인 행동까지 전부 깨끗하게 다시 쓸 거야. 주인공들이 부조리한 비극을 뛰어넘는 내용의, 그야말로 알기 쉬운 ‘이야기’로. -이즈미

다시 말해, 이즈미가 언론에 밝힐 내용은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즈미가 모임에서 사건 당시 스카이라운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이즈미의 말 바로 다음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서술된다.
진상은 이즈미의 이야기와는 반대다.
고즈에를 범인으로 오인해 의자로 때렸고, 유키오가 눈물을 그치지 않자 남자가 유키오의 목을 조르고 결국엔 수건으로 입을 막는 등.

만약 이즈미가 이를 밝히게 되면, 이즈미에게 향하던 비난의 화살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특히, 고즈에에게는 더더욱.

그러나 이건 이즈미가 바라는 ‘결말’이 아니다.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비난받고 있다. 이즈미에게 집중되는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진 않다. 이는 계속 ‘더 나은 선택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산(오다지마)이나 하마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백조, 오데트)인 동시에 흑조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즈미는 모임에서 이야기를 거짓으로 말했고, 고즈에가 유키오의 시체를 방어막으로 삼은 걸 밝히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백조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즉, 이즈미가 하고 싶은 것은 비극이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비극의 피해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모두 자신만 생각하며 기회와 능력, 필요만 있으면 남을 죽이지. 타인 따위 벌레처럼 짓밟지. 그래, 그게 바로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네가 옳아. 1밀리미터도 의심할 것 없이 옳아. -니와

이는 위와 같은 니와의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인 동시에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하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비극을 겪고 좌절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이즈미의 말처럼 “고작 이정도의 비극으로 춤추지 못하게 될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백이냐 흑이냐 이분법적으로 가르려고 한다. (그쪽이 받아들이기 편하니까)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상황은 회색에 가깝다. 100% 누구의 잘못, 누구의 책임으로 정리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다. 특히 그것이 죽음과 직결된 상황이라면.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자신이 처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나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건 인간의 오만이라고 하지 않던가. (발언의 출처가 생각이 안난다. 찾으면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