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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영화)‘의 스포일러 있음
관람일: 2025.03.14
들어가는 글
보러 갈까, 말까를 한 3일 정도 고민한 끝에 보러 간 영화다.
미스터리물을 원래 좋아하는 터라 결국엔 보러 갔고, 보고 나니 보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정리
4.5점.
‘미스터리 스릴러’ 라는 장르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영화다.
다소 뻔할 수 있는 메세지를 미스터리와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후기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갑작스런 교황의 사망으로 인해 열린 콘클라베 (교황 선거) 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단순히 ‘콘클라베’만 다뤘다면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작중에서 말하길 ‘모든 추기경이 원하는 자리’인 교황직을 놓고 유력 후보들 사이의 신경전과 스캔들, 그리고 숨겨진 음모까지 드러나며 영화는 흥미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콘클라베를 총괄하는 동시에 투표권자인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의 시선으로 진상이 파헤쳐지면서 ‘결국 누가 교황이 될 것인가’를 더더욱 예측하기 힘들게 만든다.
영화 내의 모든 교황 유력 후보자들은 ‘교황’이 되기에는 결격 사유가 있다.
- 트랑블레
- 전대 교황에 의해 파면됨
- 협잡: 다른 유력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판을 짬
- 자신에게 투표하도록 다른 추기경들을 매수
- 성직 매매
- 아데예미
- 성추문
- “동성애자는 살아서 감옥에 가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by 벨리니
- 테데스코
- 극단적인 전통주의자
- 벨리니 (로렌스가 지지하는 후보)
- 현실주의자
- 간단하게 정리하려다 보니 ‘현실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현실주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 영화 내에서 드러나기로 ‘교황’의 재목은 아니다.
- 현실주의자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벨리니’가 가장 나은 후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선 벨리니에겐 ‘교황’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없다.
대사를 보면 (모든 추기경들은 교황이 되길 원한다는 발언) 교황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벨리니의 주 목적은 “테데스코가 교황이 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아데예미가 몰락한 후 트랑블레와 테데스코의 경쟁이 되려 하자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트랑블레에게 표를 주기로 한다.
이 논쟁에서 “우리가 차악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냐”는 로렌스에 대한 반박으로, 벨리니 지지자 중 다른 추기경이 “우리는 이상을 좇지만 인간이기에 오명 하나 없는 후보는 없다.”는 말을 한다.
여기가 내가 벨리니의 교황 결격 사유로 ‘현실주의자’라는 표현을 쓴 이유이면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내가 종교가 없는 사람인지라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감히 말해보자면, 나는 신실한 종교인들이 존경 받는 이유는 최대한 자신의 이상(=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는 사마리아인이든 아니든 사랑을 베푼 이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고 말한다. 즉, 그 사람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말일 테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감정적인 동물이고, ‘확증편향’이란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성조차 감정에 휘둘린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지를 알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확증편향 까지 가지 않더라도 해야할 일을 미룬 경험 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실한 종교인들이 존경 받는 것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상대로 행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누구나 알기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콘클라베는 가톨릭의 지도자인 ‘교황’을 뽑는 선거다.
가톨릭 신자들 중 가장 위에 설 자가 마땅히 자신의 믿음과 양심, 나아가 이상을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벨리니가 교황이 될 재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에 트랑블레에게 자리를 제안 받고 그에게 협력한다는 암시가 나오기도 한다.)
로렌스는 트랑블레가 교황으로서 적합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전대 교황이 사망 전 마지막 일정에서 그를 파면했고, 아데예미의 몰락을 유도한 게 그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로렌스는 교황이 사망한 방의 봉랍을 깨고 들어가 트랑블레가 추기경들을 매수하고, 성직 매매까지 저질렀다는 사실과, 그 증거인 보고서까지 손에 넣게 된다.
결국 로렌스가 해당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아데예미에 이어 트랑블레까지 몰락하게 된다. 벨리니는 원래 4명의 교황 유력 후보 중에서 가장 표가 적었고,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던 반면 로렌스는 콘클라베 첫 날의 연설 덕분에 계속해서 표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테데스코와 로렌스의 경쟁이 된 셈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렌스도 투표 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영화 내에서 로렌스의 투표 용지 속 내용이 나타나는 것은 3번이다.
알도 벨리니 → 벨리니 → 로렌스 순으로 드러나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앞에서 나타난 정갈한 글씨체는 온데간데 없다.
로렌스가 여전히 자신이 교황이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해당 투표는 폭탄 테러의 여파로 무산된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해당 소식은 콘클라베 동안 외부와 차단되어야 함에도 추기경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전통주의자인 테데스코가 득세한다. 그는 “우리가 언제까지 나약하게 있어야 하냐”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종교 전쟁과, 저 짐승들과 싸울 지도자”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뱉는다.
테러의 직접적 대상이 되었던 추기경들이기에, 이 발언에 찬동하는 추기경도 나타나고 이에 반발하는 추기경도 목소리를 내면서 현장은 금세 난장판이 된다.
이때, 콘클라베까지 아무도 존재를 몰랐던 인펙토레 추기경, 베니테즈가 입을 연다. 카불에서 선교를 하면서 직접 전쟁을 겪어본 그였기에 그의 발언은 강한 무게감을 가진다.
“우리는 증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테데스코의 발언에 반박한다.
이때의 연출이 참 인상적이었다.
화면의 중앙에만 조명이 비춰져 화면 양 끝에 있는 로렌스와 베니테즈는 거의 어둠 속에 있다. 조명의 빛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테데스코를 중심으로 한, 그의 발언에 찬동하는 사람들이다.
주목받지는 못할지언정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하는, 소수의 사람과 옳지 않을지언정 공감하기 쉽기에 주목받는 다수의 사람들. 이 두 집단의 대비를 한 눈에 보여준다.
여기까지 봤으면 당연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3분의 2 이상의 표를 받고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베니테즈다.
이렇게 끝났다면 나쁘진 않지만 후반부 전개가 다소 뻔해서 아쉬운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가장 큰 반전을 보여준다.
바로 베니테즈가 성염색체 상으로는 여성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인터섹스: 생식기가 완전히 여성의 것도 남성의 것도 아닌 상태. 영화에서는 남배우가 배역을 맡았다.)
즉, 어떻게 보면 베니테즈는 그 어떤 교황 후보보다 자격이 없는 존재다.
그러나 베니테즈는 투표를 통해 교황으로 선출된, 3분의 2 이상의 추기경이 교황이 될 자격이 있다고 본 사람이다. 그 추기경들의 판단 근거는 당연히 테러 이후 베니테즈가 보여준 태도와 발언일테고 이는 베니테즈의 성염색체가 XX인지 XY인지는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는 그 사람의 배경이 아닌 행위여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흐름 상 미처 다루지 못하고 이제야 적는데, 로렌스의 콘클라베 첫 날의 설교도 기억에 남았다.
보면서 ‘추기경들 앞에서 저렇게 과감한 발언을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과감한 발언이었다. 그 모든 대사를 옮겨 적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나무위키의 내용을 옮겨둔다.
“사도 바울로께서 말씀하시길,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복종하여라”라는 말로 운을 뗀 로렌스는 사도 바울로의 일화를 계속 언급하며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는 말을 이어나가고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관용이 필요하며, 어떤 개인이나 세력도 다른 이를 지배하려 해서는 아니 됩니다’, ‘죄를 범하고 용서를 구하는, 다시 나아가는 교황을 허락해주십시오’라는 강변을 하게 된다.
- 나무위키, 콘클라베(영화), 2025.03.17 00:08:06, https://namu.wiki/w/%EC%BD%98%ED%81%B4%EB%9D%BC%EB%B2%A0(%EC%98%81%ED%99%94)#s-7.3
흔들림 없는 믿음, 즉 ‘확신’을 추구할 것 같은 추기경이 되려 ‘확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죄라 말하며, 대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행위인 ‘의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발언의 내용보다는 - 물론 그 내용도 인상적이었으나 -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배치해 자신의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그 전달 방식이 인상적이었다.